97년 대선 승리 후 신계륜은 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고건 민주당 후보를 도와 당선된 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하며 행정경험을 했다. 후일 그는 중앙정부의 어떤 장관직보다도 행정을 배울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였다고 술회했다. 그렇게 김대중 대통령의 정부가 지나가는 길목에 2002년 대선이 자리했다.
신계륜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2002년 대선이라는 전쟁을 맞았다. 본선이 임박해오자 그는 비서실장 겸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 협상단장을 맡았다. 최초에 이해찬 단장이 협상에 임했으나 협상이 결렬되자 신계륜이 맡게 되었고 김한길(TV토론), 홍석기(여론조사) 등 3명이 한팀을 이루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후보단일화가 성공되고 그 여세는 선거일까지 이어져 선거 당일 정몽준 후보의 일방적 선거 공조 파기선언에도 불구하고 노무현후보가 승리하여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 이 과정은 ‘지옥에서 천당까지’라는 말로 표현되듯 예측하기 어려운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계륜은 침착하게 이를 잘 관리하고 극적으로 성공시켜, 일등 국회의원을 뛰어넘어 전국적인 정치인으로서 그의 협상력과 정치력을 높게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신계륜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비서실장과 인사특보를 하며 초기 내각구성과 청와대 인사에 참여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청와대나 정부의 어떤 직책도 맡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대통령 선거시 정치자금법위반으로 2004년 불구속 기소되는 운명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