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륜, "41주년 광주항쟁 생명과 평화의 새시대로 ... "
- 사단법인 윤이상평화재단 신계륜 이사장과 회원들로 구성된 참배단 30여 명이 14일 오전 11시 40분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 “오늘은 80년 5월 14일 서울의 봄 서울역 시위가 시작된 날"
- “(광주)영령들께 머리 숙여 참회합니다”
2021. 05.14. 15:21:36
신계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이 국립5.18묘지를 찾아 영령(英靈)들께 분향을 올리고 있다. 2021. 5. 14.
사단법인 윤이상평화재단 신계륜 이사장과 신정치문화원 회원들로 구성된 참배단 30여 명이 14일 오전 11시 40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신계륜 이사장은 매년 빼놓지 않고 참배행사를 진행해 왔으며, 이번 참배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원을 최소화하여 참배하게 되었다.
참배단은 이날, 두 팀으로 구분되어 국립5.18민주묘지 입구 주차장에 집결했는데, 한 팀은 승용차 또는 도보로, 본진인 다른 한 팀은 신정치문화원 사무실(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96 수복빌딩 2층)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로 각각 이동했다.
신계륜 이사장이 탑승한 본진 버스는 오전 7시가 조금 지나 신정치문화원 사무실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최고위원의 배웅을 받으며 광주 망월동을 향해 출발했다.
특히 이날 행사는 예년과 달리 신계륜 이사장의 특별 당부로, 개별적으로 참가하는 회원은 물론 버스 1대에 19명으로 한정하여 자리를 배정하는 등 코로나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치뤄졌다.
버스 안에서 회원들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일체의 식음료는 제공되지 않았고, 중간에 휴게실을 이용할 때 개별적으로 커피 등의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하고, 승하차 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준수했다.
국립5.18민주묘지 부근에서 참배에 참여한 ‘신계륜과 걸어서 평화 만들기’ 회원들이 ‘광주항쟁 정신 이어 걸어서 백두산까지’라는 구호가 적힌 프랭카드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21. 5. 14.
제시간에 맞춰 묘지 주차장에 모인 참배단 일행은 잠시 신계륜 이사장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난 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차장에서 묘지 입구로 이동하여 방명록에 서명하고 묘지관리인의 안내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신계륜 이사장은 방명록에 “41주년 광주항쟁 생명과 평화의 새시대로...”라고 적었다.
헌화·분향이 끝난 후 참배단 일행은 묘소(1구역부터)로 올라가 개별 헌화 및 애도의 시간을 가졌으며, 신계륜 이사장은 윤상원 열사, 박관현 열사, 무명전사의 묘에 헌화했다.
생전 박관현 열사(위), 윤상원 열사(아래)모습.
이후, 오후 1시경 참배단 일행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준비된 도시락으로 충분한 간격을 둔 4인 1조로 식사를 마쳤다. 이때, 일행 모두는 마스크를 벗고 하는 식사이므로 4인 1조의 식탁을 이동하지 않았으며, 준비된 음료도 그 식탁 안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배단은 식사 후 기념촬영 및 개별 시간을 가진 뒤 오후 2시 귀경길에 올랐다.
이날 신계륜 이사장은 “오늘은 80년 5월 14일 서울의 봄 서울역 시위가 시작된 날입니다. 내일은 80년 5월 15일 서울의 봄 서울역 회군이 이루어진 날입니다”라며 “영령들께 머리 숙여 참회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름은 있으나 아직 몸을 찾지 못한 전사들과 더구나 이름도 몸도 없는 무명의 전사들에게는 더 머리 숙여 참회합니다”라고 말하고 끝내 고개를 떨구었다.
신계륜 이사장은 또, “항쟁은 열흘로 끝이 났지만 이 들불은 꺼지지 않고 그로부터 7년 뒤에 6월항쟁으로, 36년 뒤 촛불로 타올랐습니다”라며, 80년 광주항쟁으로부터 길게 이어간 시민항쟁의 배경에는 사상과 이념을 떠나 죽임 당하고 일그러진 생명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자리잡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신계륜 이사장은 “광주 항쟁 41주년을 맞아 저는 광주항쟁이 보여준 생명과 평화에 대한 사랑과 염원이 이제 한반도 전체를 이어주는 단단한 밧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광주항쟁 41주년을 맞아 새삼 80년 ‘들불야학’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그리고 버마항쟁에 대한 피끓는 연대의 심정을 전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의 마흔한 번째 5.18민주묘역 참배행사를 마무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최고위원이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단 버스에 올라 신계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과 참가자들에게 배웅인사를 하고 있다. 2021. 5. 14.
<신계륜 이사장과 5.18광주민주화운동>
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진행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5.18광주민중항쟁,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 광주사태, 광주학살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며, 신계륜 이사장은 ‘광주항쟁’이란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
국립5.18민주묘지(광주시 북구 민주로 200, 운정동 563번지)는 97년에 조성되어 국립묘지로 승격한 신 묘지로, 그 이전부터 있었던 구 묘지와 구별된다.
신 묘지는 1구역에서 10구역으로 구별되고 1,2 구역은 80년 당시 사망한 분들이 중심이 되는 묘지이고, 3구역에서 9구역까지는 그 이후 사망한 분들의 묘지이며, 10구역은 사망사실은 확인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한 봉분 없는 묘지이다.
신계륜 이사장은 매년 구 묘역과 신 모역을 참배해 왔다.
참배 모습.
사망자는 5.18 당시 직접 사망자 165명(군인 사망자 22명 제외)과 행불자와 이후 후유증사망자 등을 포함하면 700여 명에 이른다. 그 외 부상자, 고문 구속자를 포함하여 관련 피해자를 계산하면 5,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80년 당시 고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신계륜 이사장은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수배 중이던 5월 18일 광주로 내려가 운명같은 항쟁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후 광주 광산구 은신처에서 도청이 다시 군인들에게 점령되던 다음날인 5월 28일 광주를 탈출하여 서울로 돌아와 광주항쟁의 참상을 알리다가 체포되어 1년 6개월을 복역한다.
이후 신계륜 이사장은 1983년부터 개인적으로 구 묘역 참배를 시작했으며, 92년 국회의원이 된 후로는 민주당원들과 함께 집단 참배를 해왔고, 2009년 당시 신계륜 의원의 제도정치 외 조직인 신정치문화원이 창립된 후로는 ‘걸어서 평화만들기’ 회원들과 ‘걸어서’ 또는 일부 차량으로 해마다 참배해오고 있다.
올해는 신계륜 이사장의 41번째 5.18을 맞는 참배이고 코로나를 고려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참배를 하게된 해이다.
신계륜 이사장과 박관현 열사는 광주고 22회 동기동창이고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때 각각 고대총학생회장과 전남대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박관현 열사는 전국적 수배를 피해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82년 광주교도소에서 단식하다 사망했다.
항쟁 당시 거의 유일한 항쟁의 홍보물 ‘투사회보’를 발행하며 항쟁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들불야학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신계륜 이사장의 존경과 애정은 매우 켰다. 들불야학은 전남대 학생 출신 노동자 박기순(82년 노동운동 중 사망), 박용준(들불야학 학생, 5월 27일 도청에서 사망), 윤상원(들불야학 교사, 항쟁지도부 대변인, 5월 27일 도청에서 사망), 김영철(들불야학교사, 항쟁지도부 기획실장, 5월 27일 도청에서 체포되어 이후 고문후유증 등으로 사망), 전복길, 최기혁 등이 활동하던 광주 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으로 평가된다.
신계륜 이사장은 이번 참배에서도 친구인 박관현 열사 묘소, 윤상원 열사묘소(1981년 윤상원,박기순의 영혼결혼식으로 박기순과 합장. 이 결혼식에 연주된 노래곡 말미의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항쟁과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대표곡이 됨). 그리고 행불자 묘소에 개별적으로 참배했다.
서울, 맹인섭 기자 mis72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