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닦아준 사람의 눈물
설 연휴 나는 89세의 노모의 집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냈다. 나 때문에 걱정이 많지만 속내를 잘 말하지 않는 어머니이신데 설 연휴기간에는 많은 말씀을 하셨다. 주로 ‘왜 정치 하는지’ 어머니 특유의 간단한 말로 나를 타이르셨지만 그것보다는 어머니의 경험담 하나가 내 가슴을 찌른다.
어머니는 매일 종암동의 노인종합복지관으로 나가 노인들과 잘 어울리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하루는 추운 날이라 모자를 쓰고 복지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생각해보니 모자를 복지관에 두고 왔다고 생각하셨다. 다시 돌아가셔서 복지관을 뒤져도 모자가 없었다. 그냥 복지관 문을 나오시는 어머니에게 한 할머니가 물으셨다. “아까 가더니 왜 다시 왔소.”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모자를 쓰고 왔는데 어디에다 두었는지 모르겠소.” 그 할머니가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 지금 쓰고 있는 모자가 그 모자 아니요?”
한 할아버지 역시 모자를 쓰고 오셨다가 집에 가려고 보니 아무리 찾아도 모자가 없었다. 그냥 집으로 가려다가 문 앞 거울을 보니 자기가 버젓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옆의 할머니에게 이야기하자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힘주어 나직히 말씀하셨다
“절대 누구한테 그 이야기 하지 마세요. 말하면 아들 손에 끌려서 요양소에 감금된답니다”
연휴기간에는 내 친척들도 할머니를 뵈러 많이 온다. 그 중 매년 찾아오는 사촌동생 하나는 술 한 잔 하다가 나에게 다음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건강하던 동생이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쉬다가 쓰러졌다(나중에 병원에서 밝혀진 바로는 갑작스런 간 수치의 순간 급상승). 겨우 가족들에게 연락했지만 모두 사정이 있는지 달려와주지 않았다. 쓰러진 동생은 순간적인 배신감과 절망에 빠져 생애 처음으로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눈물이 눈에서 졸졸 흐르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혼자 남겨진 절대 고독”
그런데 집에서 기르는 개가 동생에게 다가와 흐르는 눈물을 혀로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