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7월 16일 오후 2시 성북구청에서 열린 신정치문화원 임시총회에서 신계륜 이사장이 한 연설의 전문임)
신동엽 시인의 시에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가 있지요.
“4월도 알멩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여기는 알멩이만 남았네요.
자 오늘은 이 알멩이들의 힘찬 박수로 비영리법인 신정치문화원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박수).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그래도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모임에는 국회의원이나 외부 인사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그냥 인사하러 오시는 분들보다는 여기에 진심을 갖고 참여해주신 회원님들이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초대받은 여러분들은 사단법인 신정치문화원 회원이거나 <걸어서 평화만들기> 행사에 한번이라도 참석해서 이름을 적어주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이 아닌 경우에는 지금 회원에 가입해주시면 되겠지요(웃음,박수).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오늘에 이른 제가 이번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여러분의 걱정이 커졌습니다. 저 자신 그리고 정치일정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제 탓이기 때문에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지금 저는 중앙당의 사회적경제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당무위원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중앙당의 적절한 당직을 갖고 저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겠습니다.
2008년 창립된 사단법인 신정치문화원은 비영리법인이고 성북구 월곡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월 1만을 내는 회원을 포함하여 회원은 입회를 신청하신 분은 800여명이고, 신정치문화원 <걸어서평화만들기>에 참여한 분들을 포함하면 약 3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성북구를 포함하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억울하지만 재판을 받고 있는 등 형편과 처지가 어려운 것이어서 일부는 회원에서 떠나시는 분들도 있고, 또 오히려 일부는 새로 가입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국회의원이 아닌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빛나는 회원과 지지자들이 돋보이고 신정치문화원의 깃발과 가치를 선명하게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박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큰 꿈을 꾸었습니다. 자유와 민주의 국가를 열정적으로 꿈꾸었으며 열심히 싸우고 일했습니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열망하는 <걸어서평화만들기> 속에서 무언가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민주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노동자를 세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영세중소 상공인들의 생존 생활상의 요구에 주목하며 이 분들이 웃으면 대한민국이 웃는다고 생각했습니다.이 분들이 바로 서면 지역 공동체가 윤택해지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인, 아동, 여성들의 권익 향상에 귀기울였으며, 사회적경제가 기울어진 우리 경제를 치유하는 실천적 대안이라고 확신하고 당의 사회적경제위원장을 맡아 19대 국회 내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조금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이성과 더불어 삭막한 경쟁사회에서 잊혀졌던 따뜻한 감성이 되살아나 인정과 사랑이 넘쳐나는, 그래서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에게 그런 꿈을 실현해주기를 바라면서 저를 지지했던 것이겠지요(박수).
저는 지금의 난관속에서도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한번도 그 꿈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제가 남은 인생동안 살아갈 영혼이 깃든 한 인간으로서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박수).
저는 저의 나이 37세 때부터 지금까지 앞에서 말한 꿈을 꾸면서 정치인으로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저 같은 사람을 두고 직업정치인이라고 합니다. 제가 바로 직업정치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업정치인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직업정치인이라는 말을 꺼려하지만 저야말로 영락없는 오갈 데 없는 직업정치인입니다. 변호사는 정치하다가 변호사로 직업을 바꾸고 의사도 정치하다가 의사로 돌아갈 수 있으며 교수도 교수로 돌아갈 수 있지만 저는 돌아갈 곳도 없습나다. 굶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는 정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국회의원 되는 것이 꿈이 아니고 제가 바라는 세상이라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북구를 떠나지 않습니다. 92년 당시 처음 출마했을 때 저는 선거 때만 되면 찾아오는 ‘낙하산’, ‘철새’ 정치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북에 뼈를 묻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지키는 것이 그래서 약속지키는 정치인 하나쯤 있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박수).
다른 한편 지금 생각해보아도 또 딱히 여기를 떠나가서 안주할 곳도 저는 없어 보입니다. 제가 국회의원이던 아니던, 심지어 제가 정치를 하던 안하던 저의 땀과 눈물과 사랑이 가득 담긴 성북의 거리와 성북사람들을 떠나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성북과 성북사람들을 떠나서 이제 제 인생이 없다 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박수).
아까 말씀드린 사업계획을 좀더 구체화하여 성북구뿐만 아니라 전국의 현장을 찾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참된 친구가 되겠습니다.
제 정치 여정에 편안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민주화운동 시절에는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고 37세에 정치를 시작하면서 제 고향인 함평에서 출마해달라는 김대중 정대통령의 의사를 거부하고 성북에서만 6번 출마하여 4번 당선되었고 2번은 낙선했으며 지난 선거에서는 출마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시면 잘 알겠지만 단 한번도 편안한 출마는 없었습니다. 영광도 있었지만 시련이 더 많았습니다. 그 만큼 저의 정치 여정이 동지도 많지만 적도 많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14년 8월, 입법로비 혐의로 저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애초에 기소될 수 없는 일을 기소한 것입니다. 너무 억울하지만 1심에서 전부 무죄를 판결받아 여러분의 근심과 걱정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1심에서는 주요부분인 3000만원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나머지 일부 부분은 유죄를 선고 받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2심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고 전체 무죄를 받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될 것인데 아마 최종결정은 내년을 훨씬 넘어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은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겠지만 사태는 명료하고 정치인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제 영혼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자유롭고 깨끗하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박수).
가진 것 없이 정치를 시작하여 지금도 제 꿈을 꾸는 정치인인 저는 생활하는 것 자체가 아마도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단 한번도 여유롭게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궁핍하나마 어떠한 경우가 오더라도 여러분의 사랑만 있으면 저보다 더 궁핍한 사람들과 취업을 못해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과 더 깊게 공감하며 이 나라의 변화와 진화를 위해 저의 일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특히 멀리서 전라도 각지에서 경상도 각지에서 빗속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