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자 ‘임을 위한 행진곡’
5.18 36주년, 2016년 5월,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사) 신정치문화원 회원들과 함께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나의 20대에 맞은 광주항쟁을 기념하고 마음의 양식으로 삼기 위해 나는 나 혼자 또는 여럿이 그리고 정치에 입문한 92년부터는 매년 당원들과 함께 집단으로 망월동을 참배해왔다. 광주항쟁은 내가 재야운동을 하고 내가 정치를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는 5월 27일 새벽 공수부대의 도청 공격에 맞서 싸우다 장열하게 전사한, 학생출신의 가장 탁월한 5월 광주항쟁의 지도자였다. 총을 들고 항쟁에 나서는 것은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쟁의 지도자는 그런 사람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윤상원 열사는 공수부대의 진입이 임박한 긴박한 시기에 나이 어린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모아놓고 총을 놓고 집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너희는 오늘의 이 일을 잘 기억해서 기록하고 주변과 후배들에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7년 뒤 그 후배들은 드디어 6월 항쟁을 일으키고 군사정부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런 윤상원 열사를 두고 자살했느니 하는 넋 빠진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광주항쟁이 북한의 조종과 선동으로 이루어졌다고 거짓 선동하며 신성한 광주항쟁의 목메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의 무슨 노래와 비슷하다 모함하며 제창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해괴한 짓을 하고 있다. 그들은 말을 다소 고상하게 표현할지는 모르지만 다 한패이며, 그 정상에는 누가 도사리고 있는지 국민들은 다 안다.
광주항쟁은 이제 아픔과 분노와 절규를 넘어서서 현대 우리 민족의 혁명적 민주주의 역사를 만들어낸 자랑스런 국민항쟁으로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되어야 한다. 80년 광주항쟁은 윤상원열사의 말대로 후배들에게 기록돼 전승, 발전되며 총은 들지 않았지만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선거에서 국민의 혁명적 압력으로 우리에게 잊지 않고 다시 다가오지 않았던가.
국민의 폭풍은 항상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그 파도를 잊고 거만해질 무렵, 조용하던 바다는 일순 폭풍으로 몰아치며 거짓과 기만의 세상을 쓸어버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