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다쳐 70여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전신 마취를 두 번이나 하고 두 번의 뇌수술을 받은 90세의 어머니가 이 심각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머리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해서 다리는 걷지 못하고 머리는 치매에 가까우며 대소변을 기저귀에 보며 음식을 입으로 거의 먹지 못하던 어머니는 입원 기간 내내 전력을 다해 자신에게 찾아온 상황 전체에 대해 저항했다. 걸으려고, 기억을 되찾으려고, 화장실을 혼자 힘으로 가려고, 음식 넣는 콧줄을 거부하고 입으로 먹으려고 하는 혼자만의 전쟁을 그것도 70여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항했으니 지칠만도 한데 어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가 화장실에 가려고 몸부림칠 때마다 병원은 어머니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보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아예 어머니의 두손을 아예 침대에 묶어버리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의사와 나의 짧은 대화.
“무엇을 원하십니까”
“마비가 온 것도 아니니 최소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걷기를 원합니다”
“과욕입니다”
다들 양로원에 보내야 한다고들 이야기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머니의 그같은 의지야말로 재활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아직 퇴원하기에는 이르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집으로 모시기로 결심했다. 사실 어머니는 머리 수술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수술과 입원 스트레스 때문인지 병원이 병원의 분위기가 너무 싫으셔서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거듭거듭 말해왔다. 집에 돌어온 머머니는 편안해 보였다. 우선 나는 어머니에게 채워놓은 기저귀를 뺐다. 부축해서라도 반드시 화장실 가서 대소변을 보아야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 폐렴 위험이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 말대로 멀건 흰죽을 버리고 부드러운 쌀밥으로 바꾸었다. 빨대로 빨아먹어야한다는 병원의 권유도 무시하고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컵에 시원한 냉장고의 물을 벌꺽벌꺽 드시게 했다. 의사의 권유도 일리가 있지만 본인 의사대로 하지 못하면 병이 나는 90세 어머니의 성깔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소 위험하더라도 어머니가 어머니의 소망대로 돌아가실 때까지 환자로 취급되고 부양되는 삶을 살아가지 않고 오히려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손으로 밥을 짓고 자기 다리로 화장실을 가는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우선 환자적 안정된 생활환경부터 바꾸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우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갔다. 다만 병원에서 어머니를 도와주던 간병인이 집에까지 온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걸으실 때까지는 불가피하다는 나의 간곡한 말에 그냥 넘어가는 것 이외에는 아마 의사들이 놀랄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드디어 스스로 그토록 먹고 싶어하던 보리밥을 손수 지어서 먹었을 뿐만 아니라 창문틀을 잡고 베란다로 나가 6개의 화분(어머니의 3남 3녀)에 물을 주었다. 저녁 잠자리에 들 때는 10시간 넘게 깊은 잠에 빠져 소변을 참지 못하는 날도 있었지만 의식이 있는 한 어머니는 내가 만들어 놓은 손잡이를 따라 걸어가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장롱에 있는 통장에 돈이 400만원 들어있을 거라고 주장하더니 나의 부축을 받고 장롱으로 가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열어보시더니 은행통장 하나를 나에게 주며 확인해보라 하였다. 놀랍게도 정말 410만원이 예금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의지가 만든 기적이었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지만 때로 병원이 환자를 환자답게 안전하게 길들이기도 한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겠다는 환자에게 소변줄을 달아 몇 달을 지낸다면 멀쩡한 사람도 조금씩 소변을 흘리는 버릇이 길들여져 소변줄을 떼어도 소변을 참기 어려울지 모른다. 기저귀 차기를 거부하는 환자에게 몇 달을 기저귀를 채우면 마찬가지로 영원히 기저귀를 채워야 할지 모른다.
이제 어머니는 환자에서 인간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물론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병원 아닌 집에서는 넘어질 위험이 증가하고 콧줄을 거부한 어머니에게는 기도로 음식이 들어가 폐렴이 올 수도 있으며 당뇨체크를 게을리해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와 나는 위험하더라고 어머니가 그토록 싫어하는 병원침대와 음식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어머니 주관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며 자유의 공기를 마시는 것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저녁 나는 홍어를 먹다가 문득 어머니가 홍어를 좋아한다는 생각에 싸들고 어머니 앞에 놓았다. 홍어가 너무 크게 썰어져 먹다가 체하거나 기도를 막을까 봐 작게 썰으려고 내가 가위를 가지러 간 사이에 큼직한 홍어를 몇점이나 드셨는지 입안 가득히 홍어를 넣은 입으로 어머니는 말했다.
“뭘 썰려고 하냐, 홍어는 한 볼테기씩 먹어야 제 맛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