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두달 넘게 입원해계시던 어머니가 병원에서 집으로의 첫 번째 외출 후 놀라보게 좋아졌던 어머니는 다시 입원하자 매일 나에게 꿈이야기를 하셔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 꿈은 어머니의 어지러운 병상의 새벽에 현실이 되어 어머니와 나를 괴롭혔다. 길거리에서 울고 있던 7살 난 아이가 불쌍해서 집으로 데려왔는데 가서 밥을 주어야 하니까 나에게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씀하신다. 꿈을 꾸어서 그렇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다시 몇 번을 반복해서 7살 난 불쌍한 아이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머니가 못 가면 밥을 못 먹어 굶어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불쌍해도 그냥 놔두고 올 걸 그랬다고 하시더니 급기야 아이가 굶어죽었다고 단언하기 시작하다가 어제는 굶어 죽은 아이의 몸이 말라 비틀어져서 어머니 주먹만하게 작아졌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함께 하려던 회원들에게 광화문집회에 참가할 수 없음을 알리고 전화기를 끊고 다시 의사에게 두 번째 외출을 요구하여 어머니를 크리스마스 이브의 찬바람 속에 담요로 둘둘 둘러싸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은 어머니의 이야기 때문에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날도 어머니는 점심 무렵까지는 조금 횡설수설 하시더니 갑자기 저녁도 먹을 새도 없이 잠에 떨어져 다음날 9시까지 문자 그대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그 길고 깊은 어머니의 잠 이후 아침에 문득 일어난 어머니는 방안을 두리번 거리더니 나를 발견하고 잠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기저귀에 소변을 본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며 깨우지 않은 나를 여러번 탓하셨다. 이불을 덮고 젖은 기저귀를 갈아드리려고 해도 직접 하시겠다고 거의 필사적인 노력을 다하며 나를 물리치시려고 했다. 점심 무렵 내 아들 내외와 내 아들의 9개월짜리 아들이 와서 재롱을 피우자 어머니는 증손자의 귀염에 모처럼 함박 웃음을 지으며 휠체어에 증손자를 태우고 즐거워하시기도 했다.
저녁 무렵 다시 병원으로 갈 시간이 되어가자 어머니는 말이 없어졌다.
다만 ‘가려면 어서 가자’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두운 길을 달려 병원에 다시 어머니를 보내고 오늘 아침 일찍 어머니를 찾아가자 어머니는 좁은 병상 커튼 칸막이 뒤에서 눈을 뜨고 계셨다. 어제 저녁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재활치료에도 건성으로 임하시며 발음도 더 빗나가며 빨갛고 부은 얼굴로 힘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하셨다. 바로 옆의 병상에서 어머니 또래의 할머니에게 딸인 듯한 여성의 앙칼진 음성이 내 귀를 때렸다.
“엄마 말 안들으면 요양원에 보내버릴거야”
나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어머니도 순간 나의 얼굴을 살폈다.
조금의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담당의사를 만나러 병실을 나오며 생각해보았다.
“우리 어머니들에게 요양원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