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1일 우리는 (사)신정치문화원을 창립했다. 2008년 총선에서 사상 최초의 민주당 서울 참패라는 수치 앞에서 개혁적 정치인들, 당시 86세대의 자성과 남북간의 평화 진작을 위해 <걸어서 평화 만들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백두산(중국 경유)까지 63일간의 국토대장정을 비롯해 전국의 산하를 걸으며 고난에 찬 민족의 역사적 현장을 모두 보았으며 ‘조국의 산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해 더는 그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순결함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회원 상호간에 또는 동서간에 또는 남북간에 서로 다름 속에서 점차 모색되는 협동심과 통일은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꿈을 꾸었다.
수천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비정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우리의 노력은 내가 2014년 이른바 ‘입법로비’혐의로 기소되면서 다소 침체되었다.
내 안에 깃든 전쟁과 평화를 동시에 보며 모처럼 깊어가고 커지던 평화의 질과 양이 혼돈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사람을 믿는다. 전쟁하듯 정적을 바라보고 민족을 바라보는 구시대의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정권이 바뀌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새로운 민주적 리더쉽을 강화하는 대신 검찰을 동원해 정적을 숙청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검찰인사는 왜곡되고 우리 정치와 경제는 오히려 후퇴했다. 무슨 제도를 창안할 것 없이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다. 지금 그 단계에 들어섰다.
우병우의 화면을 보고 일선의 검사들이 무엇을 느낄까.
오늘 조용히 창립 8주년을 기념하는 나는 하나의 맹세를 자신에게 한다.
“정권을 바꾸고 새로운 국가적 리더쉽을 세워서 한 단계 발전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데 남은 내 일생을 바친다.”
나의 재판을 숨죽여 바라보고 있는 지지자 및 반대자들에게 또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재판의 결과는 지금까지 우리 재판부가 역사적으로 쌓아온 과오와 진화를 함께 반영할 것이다. 직접 증거 없는 사건이 어떻게 판결되는가에 따라 우리 사회의 과거 수사관행을 여전히 유지할 것인가 이제는 버릴 것인가 결정될 것이다”
아침에 뇌출혈로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뵙기위해 병원을 찾아가니 그 와중에 ‘재판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벌써 수십번도 더 들은 이 말에 나는 ‘잘 될 겁니다’ 라는 반복을 계속한다. 나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는 한 어머니는 절대 기억을 잃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2008년 11월 11일 (사)신정치문화원 창립을 앞두고 김대중대통령은 화분을 보내 축하하면서 다음에는 꼭 참석하여 축하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한번도 참석하지 못하고 운명하셨고, 장남 김홍일 전의원은 장난기 어린 말로 휠체어에 탄 채‘빼빼로 데~이’라고 축하했지만 그 이후 몸이 더욱 악화되어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겠다. 군사법정에서 나와 함께 재판을 받았을 때 그는‘아버지를 도운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라고 재판부를 향해 울부짓던 모습을 오늘 그려본다.
모든 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미안하다.
그러나 어떤 면의 나일지라도 종국에는 나는 이 사회의 진화에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