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인가...그 무렵 나는 내 생애 최초의 주례를 섰다. 주례라기보다는 한쌍의 후배 출정식에서 사회를 보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대학에 다니고 있던 이들은 농촌에서 농민운동에 전념하기로 하고 각기 대학 등록을 포기하며 부모가 보내준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고, 한 농촌 지역으로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부부가 되는 맹세를 하는 자리에 나는 그 보증인으로 참석한 것이다. 그 부모에게는 정말 죄송한 일이 되었지만 두 사람의 결심이 너무 확고해서 이 등록금 횡령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 참 많은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시달리던 노동자와 농민들과 그 삶을 함께 하려고 그들의 생존 생활의 현장으로 그렇게 떠나갔었다.
이 부부가 아들 딸 많이 낳고 한 지역에 잘 정착해서 농민들을 위한 일을 진실로 실천하며 날이 갈수록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고 있으며, 더 많은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며 농민운동의 전형들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농활을 다녀온 학생들에게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흐믓해 했다.
백남기 선배가 세상을 떠나고 오늘 광화문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큰 집회가 열렸다. 나는 백남기 선배의 카농(카돌릭농민회) 시절을 떠올리며 노농연대의 길을 모색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 시절의 활동가들과 선후배들과 인사하며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내 귀에 들려오는 야당대표들의 목소리는 왜 그다지도 작아 보이는지. 나는 행사장을 나오면서 작은 노란리본 하나를 선물 받은 것으로 그에 대한 추모를 가슴에 담았다.
지금 나라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든 위기는 그 현상에 불과하고,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음지에서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또는 빼앗으려는 사람들의 절대불굴의 음모에 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을 보지 말고 이들 집단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연말이면 더 궁핍해질 국민들을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