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방한 중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오래된 저서 ‘오래된 미래’가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되고 소개되었을 때, 나는 건성건성 읽으면서 라데크라는 오지의 생활을 단순히 감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며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가던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의 60,70년대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느끼면서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접경지역 고지, 인도령 카시미르주에 라데크라는 지역이 있다. 16년 동안 이곳에 거주하며 이곳의 언어와 생활을 연구해온 호지 여사는 산업화된 서구와는 달리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잘 적응하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이 지역을 보고, 현대 서구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미래를 보았다. 집중화된 도시와 중앙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가치와 문화의 토대 위에서 문명의 혜택이 균등하게 주어지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런 라데크가 개발과 현대화의 이름 아래 서구의 가치와 기준으로 거꾸로 변화하려는 것을 목격하자, 호지 여사는 전력을 다해 개발과 현대화가 만든 서구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며, 그렇게 되지 않을 대안을 찾아 나서며 이른바 ‘라데크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천하며 라데크 안팍에서 점차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친환경, 획일주의에서 벗어난 다양성 그리고 지역 중심의 경제 문화 생태계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정부나 관료가 아닌 시민참여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나는 71세의 호지 여사를 어제 처음 보고 이야기하며 점심을 먹었는데 그녀의 신념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사회적경제가 그런 호지여사의 대안에 동의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이 지배하는 생산과 소비구조가 강화될수록 저항할 수 없는 수직지배체계가 완성되어 민주주의가 형해화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므로 나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의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의 지배가 좀더 약화되거나 더 이상의 확대가 중지되고 새로운 대안으로 다양한 지역경제가 생태계를 이루며 발전하면,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의 독점과 지배가 사라지거나 약화되며, 나라마다 또는 지역마다 다양한 경제 생태계와 문화의 토대위에서 균형과 조화을 꾀하게 될 것이다. 지역에서의 생산과 소비가 지역의 이익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지역에서 공동체 의식이 되살아날 것이며, 구성원끼리 협동하고 상부상조하며, 좀더 친절하게 인사하며 밝은 웃음을 지으며, 고통을 전가하지 않고 분담하며, 과실을 분명하게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국적기업과 대기업도 무분별한 자신들의 영역을 찾아 올바른 분업에 동참할 수 있고, 여러 측면에서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다양성은 생존의 조건이다. 사회에서의 다양성도 사람다운 삶의 조건이다. 그리고 다양성은 다름 자체가 아니고, 다름 간의 연대이고 소통이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다.
어제 사회적경제에 관심있는 국회의원들과 구청장들과 함께 호지여사를 만나면서 나는 사회운동가로서 그녀의 모습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호지 여사는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피한 것이 아니고, 그릇된 현대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으며 서구의 일률적인 가치관과 기준이 아닌, 자연과 더 친화적인 지역 중심의 가치관과 기준으로의 이동을 말했다. 그녀는 실제 16년간의 라데크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방향 ‘라데크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호지 여사는 우선 우리나라 식사를 잘했다. 나의 젓가락이 가는 곳을 따라 굴이라든가, 두부 또는 불고기, 수수떡이나 호박전 등을 부지런히 먹는 모습이 13번이나 방한한 경험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배고파서 먹는 것 같기도 했다. 서툰 젓가락을 들고 음식 들기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고 옷에 떨어트려 부지런히 휴지로 옷에 남은 음식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현대화 또는 산업화라는 명분으로 ‘지구상의 모든 문화를 상대로 일대 성전을 펼치고 있는 글로벌경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서구식 산업화를 이룬 우리는 행복한가. 무자비한 무한 경쟁,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 중심의 극단의 이윤 추구, 자연으로부터 고립되고 사람들간의 연대와 소통이 사라져가는 공동체, 그로부터 파생되는 폭력, 불안, 우울 등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이런 사회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호지 여사는 라데크에서 라데크 사람들의 ‘삶 자체에 대한 순수하고 거리낌 없는 경애심’을 보았으며 그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와 땅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통해 물질적 풍요나 기술이 진보같은 것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른 방식의 삶도 가능하다는 사실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