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주례를 서면서 되돌아 보니 그간 500번 이상 주례를 선 것 같다. 지금은 정치인에게 지역구 주민에게는 주례를 설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지난 시절 참 많은 사람들에게 주례로서 봉사했던 것 같고, 지금도 지역구 주민이 아닌 경우 간곡한 부탁이 있으면 주례를 선다.
내 나이 37세에 지역구 당원들의 강력한 권유로 첫 주례를 서던 날, 잘 진행하던 의식이 한 참석자가 나를 보고 “저 사람이 주례야 신랑이야”하는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바람에 그 이후로 이마에 땀을 쏟으며 횡설수설했던 기억이 새롭다.
어제 주례를 선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가 둘 다 공무원이어서 그 나마 다행이지만, 대다수 우리나라 청년들의 상태는 너무 불행하다. 점차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양극화의 영향은 청년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그러면 그럴수록 그 부모들은 더 안전한 결혼을 강권한다.
돈 있고, 번듯한 집 있고, 직장 좋은 배우자. 즉‘안전한 결혼’에 더 매달린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이 최고이며 사람 간의 사랑이 최고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결혼은 형해화 되며 사랑은 다른 곳을 찾아 헤매거나 음지로 나아가게 된다. 사랑이 방황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을까.
어린 시절 누구네집 딸과 누구네집 아들이 야반도주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이 되었는지... 오히려 그 시절 절대 순수의 야반도주가 오히려 그립다.
청년들이여, 당장의 편안함 속에 미래의 사랑을 잠재우지 말고, 물질적 조건을 뒤로 하고 내가 진정 사랑하는가를 끊임없이 되묻고, 사랑을 찾아 거침없이 떠나라.
해와 달과 별들 사이를 지나 비록 어둡고 고독하지만 극도로 자유로운 우주의 항로를 찾아가는 항해사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