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설악산의 신비한 기운에 더해 동해바다의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 낙산 해변을 걷고 싶어진다. 4월 25일 양양으로 간 나는 낙산 해변을 거쳐 낙산해수욕장 북쪽 언덕에 우뚝 서있는 낙산사에 들어간다. 낙산사 내 홍련암에 들어가는 길에, 의상대 아래 절벽의 오묘한 지점에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고 얼마 전에 낳았을 새끼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고, 보타전에 들어가서는 2시간가량 기도하며 불상의 먼지를 닦는 동행한 권미옥 의원의 고뇌를 깊게 느낀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어지러운 시기의 나는 “길에서 길을 묻다”(정념 스님의 책 제목)라는 상징어로 기억되는 낙산사 내의 길을 따라 정념스님의 안내로 보타전에 모셔진 노무현 대통령의 외로운 영정을 보았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노무현대통령의 영정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정념 스님에게 노무현 대통령 영정이 왜 여기에 있는지(초기, 일부 신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전 방문 때와는 달리 낙산사 그윽한 바위 위에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품은 2020년 봄에 나는 노무현 대통령 영정이 주는 새로운 편안함이 내 몸에 찾아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낙산사 보타전 문을 지나 왼쪽에 중앙의 부처님 오른쪽 측면에 모셔진 그 영정은 손님들이 오가는 문간방에 놓여진 투박한 장롱처럼 보타전의 부처님과 기도하는 신도들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있는 듯 없는 듯 노무현 대통령은 웃고 있었다.
시냇물이 흐르듯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품듯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세월 따라 너 나 없이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