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천은 나의 집이 있는 종암동 지점에서 3km 정도 흘러 청계천과 합류하고 청계천은 2km정도를 흘러 중랑천에 합류하며 중랑천은 다시 3km정도를 흘러 한강에 합류한다.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 서울의 3개 자치구를 지나는 천들의 양 옆으로는 자전거 길과 걷는 길이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어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는 시민들의 휴식처였다.
문을 닫은 체육관 때문에 체중이 늘어 고민하던 나는 최근 이 길을 새벽에 걷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컨디션에 따라 종암동에서 한강변 서울의 숲까지 왕복 15km정도를 걷거나 뛰면서, 코로나로 중단된 <걸어서 평화만들기> 집단행사 대신에 나 홀로 <걸어서 평화만들기>라고 스스로 선포했다.
코로나가 만든 한적함속에 동대문지역을 걸어가다 앞에서 걸어가는 더불어 민주당 유니폼을 입은 일단의 무리를 본다. 내가 속한 당이며 내가 잘 아는 안규백후보 일행이었지만 걷는 속도를 높혀 안규백후보 일행과 인사하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하는 것을 느끼다가 마침내 걷는 속도를 줄이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에게‘낯설다’라고 속삭인다. 내가 30여년간 반복해서 해온 일이 이제‘낯설다'고 느껴지다니.
그렇게 안규백후보 일행은 정릉천길 동대문구간에서 나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났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줄었지만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에게 인사한다. 출마 안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이번에도 꼭 찍어주겠다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는 내가 현재 국회의원인줄 아는 사람도 있어, 걸으면서 얻으려는 마음의 평화가 다소 흔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스쳐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일은 그리 낯선 일도 아니다.
낯선 것과 낯설지 않은 것의 충돌은 미래와 오늘의 충돌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광섭의 어느 노래에‘조금씩 잊혀져간다’라는 가사가 있다. 이렇게 무서운 말이 있을까. 희미해지는 기억속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딸의 얼굴만은 잊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애쓰는 어머니처럼, 나도 살아있는 한 내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결사적으로 지켜내야 한다.
지난 11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걸어서평화만들기>가 38선을 걸어서 넘어 북녘 땅을 지나서 마침내 백두산에 이르는 꿈은 조금씩 잊혀져가지 않는다. 오히려 나날이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