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급속히 퍼지자 나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점심도 먹고 어머니가 평소 즐겨드시는 달달한 다방커피도 함께 마시며 코로나가 없을 것같은 공기 좋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어머니의 눈치를 살핀다. 마스크를 들어 유난히 큰 어머니 귀에 단단히 걸어보고 독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름대로 코로나에 대한 이해가 모자간에 조금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에, 조용하게 듣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한 말씀하신다.
“우리는 살만큼 살았다. 너나 잘해라”
그러더니 이번에는 어머니가 오히려 내 눈치를 살피며서 조심스럽게 한마디 묻는다.
“이번에 출마 안하냐”
코로나에서 총선으로 화제가 전환되는 순간이다. 출마 안한다고 말하고 출마 못하게 된 사정을 길게 설명할 수 없어 그저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게 되니, 표정만 봐도 짐작하는 어머니는 금방 사태를 알아내시고 코로나도 총선도 아닌 바로 나를 걱정하시는 것 같다. 모자간에 형편이 간단히 단숨에 역전되어버렸다. 일순간에 나의 코로나 걱정에서 어머니의 출마 걱정을 거쳐 나에 대한 염려로 변하며, 걱정의 대상뿐 아니라 걱정의 주체까지 전환되어버린 것이다. 내심 당황해하는 순간이 지나가기도 전에 나에게 어머니는 스스로 제기한 물음에 답까지 제시하신다.
“누가 자꾸 물어봐서 하는 말이다”
어머니는 평소에‘뭐 하러 정치하냐’고 탓하면서도 선거 때 되면 반대당 할머니들과 용감하게 싸우시고 논리가 딸리면‘당신 아들이 출마하면 당신도 나처럼 할 것’이라고 강력한‘어머니론’을 폈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아들이 정치하는 것을 싫어하신 분이었고 그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아들이 많이 갖기만을 진심으로 바라셨다. 그런 생각 저 이면에는 아들의 생사여부를 모르고 하루를 백년처럼 넘기셨던 80년 광주항쟁의 처절한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은 이 이야기를 어머니가 묻기 전에 어머니에게 먼저 이야기 했어야했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오늘 이야기로 나는 어머니로부터 큰 위안을 얻게 되며 그것은 너의 주변 사람들에게 할 일을 다하라는 뜻을 중심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가까운 사람들의 이해와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의 우선순위 또는 민주주의의 기본 ABC를 어머니의 말투로 일러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나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며 앞으로 출마여부도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내 정치의 길을 걸을 것이며, 이 사회의 불평등과 남북의 대결과 긴장이 계속되는 한 언제나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때로는 무리를 지어 걸을 것이며 때로는 혼자 걷는 길도 될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때로는 나를 권력에 물들게 하며 나를 속물적 견해에 동조하게 하며 서서히 내 옷소매를 적시는 검은 물에 둔감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선택하기보다 주어진 길이 그것이라면 본심과 초심이 살아있을 때 작은 편안함에서 벗어나 큰 목표를 다시 보고 내 삶과 태도를 좀더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기로 하자.
어머니는 늘 지금의 나를, 지금의 나의 정치를 작은 것으로 만드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