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일로 토론토를 방문했다가 캐나다 양자회(Korean-Canadian Adoptee Association) 초청인사로 우리나라 아이들을 입양한 캐나다 부모들을 포함한 입양가족 40여명과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갑자기 참여하게 된 행사여서 그랬을까, 행사 내용이 미처 나에게 소화되지 않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3년만에 만나는 막내 아들의 아들에 대한 상념 때문이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왠지 캐나다 부모와 한국인 입양아 모두에게 무언가 고마움과 미안함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인사말에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이야기했던 기억만 있고 나머지는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10월 12,13,14일 3일동안 토론토의 상징 같은 CN타워에서 서쪽으로 레디트 항(Port Redit)까지 바다보다 먼 수평선을 가진 온타리오 호수가를 따라 23km를 걸은 것을 포함하여 총 33km(12일-5km, 13일-10km, 14일-18km)를 걸었다.
한국인 입양아의 캐나다 부모들이 나에게 왜 걷는가(왜<걸어서 평화만들기>를 하는가)를 물어(평화라는 이름의 딸을 가진 아버지는 걸으면서 평화를 만들었냐는 질문도 받는다),‘한반도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큰 소리로 답변하여 박수도 받았지만, 사실은 한반도 평화보다도 내 마음의 평화가 더 급하다는 사실을 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힘들어서...
나의 긴 휴식이 주는 공백에는 편안함도 있고 절망도 있다. 때때로 절망의 끝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어 위로가 필요할 때 혼자 걷게 된다. 전에는 여럿이 모여 걷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혼자 걷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에는 주변의 풍경과 동반자가 주는 위로가 컸는데, 지금은 내안의 체력 소모와 육체적 피로가 주는 내적 위안이 더 크다.
CN타워에서 바라보니 온타리오 호수에서 가장 가깝게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 꼬불꼬불 보이고, 조금 안쪽으로 자전거 도로가 다소 직선으로 나있으며 더 안쪽으로는 차가 다니는 널찍하고 황량한 도로(Lake Shore)가 반듯하게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늘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이 주는 조화로운 가을 해변의 길을 걸으며 좋은 풍경 속에 빠져 있다. 나는 타워에서 내려와 해변에서 가까운 걷는 길과 자전거 길을 단호히 버리고, 단지 빨리 걷기 위해서 해변에서 먼 황량한 차도(Lake Shore) 곁에 붙어있는 더 황량한 경사진 작은 콘크리트 인도(사실은 그것이 정확히 인도인지, 보조 차도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를 주저없이 선택했다. 좌도 우도 보지 않고 고개 숙여 오로지 앞길만 보고 걷는 것이 오늘 우울한 나의 불안한 선택이다.
그렇게... 2~3시간 쉼없이 걸어 목적지에 도달해서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바다처럼 펼쳐진 호수의 아득한 지평선을 바라본다.
조금의 육체적 피로감과 함께 조금의 위로가 비로소 바라본 눈앞의 파도처럼 조금씩 밀려오고 나는 목표라는 반환점을 돌아 출발점을 향해 시선을 거두고 고개 숙여 다시 걷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