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국회에 몸 담은지 어언 27년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3년여의 공백기, 거동이 불편해 일단 요양원에 들어가 계시는 91세의 어머니가 내 눈에는 어김없는 수감자인 것 같아 내 마음은 불편하고, 어머니의 눈에는 내가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실업자로 보여 걱정이 태산인 것 같다. 내 동생에게 내가 쌀 떨어졌는지 보고 오라고 아주 자주 말씀하신다니 말이다.
그런 어머니가 어제 색다른 전화를 나에게 했다. 매일 통화를 하지만 어제의 어머니 전화는 무언가 다른 느낌으로 내 귀에 들려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두려운 생각마져 들었다.
“이리 좀 올래?”
두려움이 느껴지면 순간 회피하는 습관도 나에게 있나 보다.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중요한 일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오라고 한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내일 점심 때 가겠다고 말하고 이리저리 전화를 해서 어머니에 대한 간접 정보를 수집해보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어머니가 나를 오라고 말한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는 전혀 없었다.
오늘 아침에 요양원에 전화해서 어머니와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하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보행기의 도움을 받으며 머리에 검은 색의 단정한 털모자를 쓰고 거의 감긴 눈으로도 천천히 나를 보더니 이윽고 소녀처럼 활짝 웃으셨다.
“오늘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보리밥 먹으러 갈까요”라는 나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대뜸 “바쁜 일이 있었냐”라고 묻는다. 나는 “38선을 걸어서 넘으려고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 총 맞아 죽는다”고 단언하신다. 처음 드리는 말에 너무나 잘 준비된 즉답같아 그런 말을 한 나는 당황하고 후회한다.
나는 눈치를 보며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지만 어머니는 식당으로 가는 차안에서도 하늘을 보더니 무심코‘이런 날은 꼭 비가 오지. 와도 많이 오지’ 라고 중얼거리시고는 어제 왜 나를 불렀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먼저 말하기도 좀 쑥스럽다.
보리밥 간판을 보고 차를 세우고 식당에 들어가 보리밥을 시켜 보리밥과 나물을 비벼 드렸는데 식당 안에 손님이 없어 썰렁한데다가 주인인 인상 험한 남자가 내 뒤에 앉아 내 맞은 편에서 손이 떨려 밥알을 많이 흘리시는 어머니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마져 드는 판국에 어머니는 보리밥을 반도 못 드시고 숟가락을 놓아 내가 얼른 일어나 어머니가 흘린 밥알을 휴지로 닦아 휴지통에 버리고 계산대로 가서 카드로 바쁘게 계산을 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돌아오는 차안에서 “보리밥도 보리가 잘 삶아지지 않아 맛이 하나도 없더니 돈은 3만원이나 받았냐. 다음부터는 손님 많은 집으로 가자. 맛도 없는데 택도 없이 비싸게 받으니 손님이 없지 않냐”
귀도 어두우신 어머니는 어떻게 3만원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고 보리가 부드러워 입안에서 혀와 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보리알이 깔깔한 돌맹이처럼 굴러다니는 것을 나도 알았지만 어머니의 관찰과 느낌은 그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명백히 내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식당에 모시고 간 것을 후회하며 다시 요양원에 거의 다 돌아왔는데도 어머니는 어제 나를 부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급기야 거의 요양원에 도착할 무렵 내가 참지 못하고 “어머니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라고 묻는다.
“모시떡 3개를 주려고 불렀다”
“예?”
“어제 니 동생이 모시떡을 좀 가져다 놓았다. 니가 어려서부터 모시떡과 쑥떡을 잘 먹지 않았냐. 그래서 너 주려고 모시떡 3개를 남겨두고 너를 오라고 한 것이다”
내 가슴이 무너지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지며 일그러졌을 얼굴을 어머니가 볼까 봐 얼굴을 조수석 반대로 돌리며 차를 길가에 천천히 세우는데 다시 들려오는 어머니의 말은 또 나를 강타한다.
“니가 오늘 온다고 아침에 듣고 침대 곁에 놓아둔 모시떡 3개를 찾았보았지만 모시떡이 안보여서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물었더니 쉬어서 버렸다고 하더라. 모시떡을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고”
다시 보행기를 잡고 문으로 들어서는 어머니에게 근무자가 “할머니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우렁찬 소리로 일부러 힘주어 대답하는 어머니의 대답도 내 귀에 총알처럼 들어박힌다.
“아들이 3만원이나 주고 사준 보리밥인디 달디 달데”
맛도 맛이겠지만 실업자 아들이 3만원이나 쓴 것이 너무 화가 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같은 날은 꼭 비가 와’라고 말한 어머니의 말처럼 언제부터인가 차창을 가볍게 때렸을 빗방울의 소리를 어느 순간 문득 들으며 어머니의 사랑의 매는 언제나 지나고 나서 듣게 되는 천둥의 소리와 같다는 깨달음이 온다. 이 나이에 끝없는 불운과 사나운 역경 속에서도 살아 계시는 어머니의 가슴 설레는 봄바람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메말라가는 내 마음의 사랑의 원천을 다시 촉촉이 적실 수 있으니 그래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