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2월 21일 울산민주정책포럼에서 신계륜 이사장이 행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강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귀한 시간을 내서 오신 분들이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아까 내빈 소개하는 분이 애를 쓰시는 것 같다. 사회자는 애를 쓰지만 자기가 내빈 소개에 빠지거나 순서가 늦게 되어 섭섭한 분들이 언제나 있게 되어, 그 분들이 나중에 불만을 토로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앞으로 울산민주정책포럼에서는 내빈석도 없애고 내빈소개도 없애서 여기 오신 분 모두가 내빈임을 알려드리면 어떨까 생각된다(박수).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주제는 나에게 너무 거창하다. 학자도 아니고 그저 민주당 생활을 조금 오래한 내가 담기에는 너무 큰 주제여서 이 자리에서는 그냥 나의 경험을 중심으로 나의 소박한 정치관을 순서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볼까 하니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먼저 내가 왜 현실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는가를 회고해 본다. 나는 과거 독재정권에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몸을 담았다. 90년대 당시 우리 노동 현실은 참 비참했다. 90년대라고 하니 아주 먼 옛날 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20년 전쯤이니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내 말은 아직도 이 사회 내부에는 독재정권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요소 요소에 깊게 깔려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세계 최장노동시간, 아주 낮은 임금 그리고 산업재해왕국이라는 참담한 상황과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노동자 무권리의 현실을 보고, 나는 노동자를 돕기 위한 일에 나의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노동이라는 부분의 민주화는 전체 사회의 민주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전체 사회의 민주화의 핵심은 독재정권을 끝내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우선적인 일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가장 민주적인 지도자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민주정부 수립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김대중 총재를 찾아가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야권통합이 필요하고 통합야당의 기치하에 독재를 반대하는 범민주세력을 하나로 모두 하나로 모아 묶을 것을 요청했다.
야권통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는 민주정부수립을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
요컨대 정치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를 하려는 이유이다. 무엇을 절실하게 느껴서 정치를 시작하는가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출세나 명예나 개인적인 이해 관계 등도 동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았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정치인은 있다고 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여기 모인 분들은 정치에 어떤 형태로나마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선출직에 나서서 선거로 당선된 분들이나 앞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은 꼭 자신에게 먼저 자문해보기 바란다.
“나는 왜 정치를 하려 하는가”
이것이 분명해야 영혼이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있어야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또는 봉사하는데 열정이 생기고 살아있는 정치를 할 수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람이 취향과 능력이 각기 다른 것이기 때문에 왜 정치를 하는지가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 사람에게 똑 같은 모습으로 구현되지는 않는다. 정치를 하는 동기가 충분하게 주어져 있고 서로 같은 동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민주당의 한 중진 정치인은 참 많은 경력을 쌓은 분이지만 모든 일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분석력과 기획력이 뛰어나고 복잡한 현상을 잘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정치에서 중요한 이견의 조정이나 협상력이 남 달리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은 달라졌다고도 합니다만, 노무현후보와 정몽준후보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협상에 당시 그 민주당 중진 정치인은 노무현후보측의 책임자로 나섰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협상은 파탄 난 적이 있었다. 나중에 내가 맡아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기여했다. 비유가 적절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반드시 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일을 풀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기획안을 마련했어도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천해나가는 남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별도로 있는 경우가 많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이후 자신의 수련과정에서 주어지고 길러진 능력과 장점은 이처럼 사람마다 다르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되 짚어보고 이것을 중심으로 정치의 동기를 구체화시켜나가야 한다.
“나는 무엇을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 바란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이 상당히 있어서 나의 경험 몇가지를 말해보기로 한다. 나는 노동운동을 했고 노동자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해 연말에 수첩을 펴서 1년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을 분류해보니 거의 100% 노동관련 인사들만을 만났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음해부터 나는 의삭적으로 사용자단체나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늘려가며 되도록 균형있는 시간 배치를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국회의원들이나 지방의회의원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민원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민원인을 상대하며, 그것도 본인이 만나기를 원하는 민원인이 아니고 내 의사와 상관없는 민원인을 밑도 끝도 없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심지어 임기 4년이 끝나고 보면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금 같은 연말이 되면 1년 일정을 정리해보고 내년의 일정을 의식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고 시간을 지배할 수 있으며 자신의 정치의 동기를 어느 정도 구현해낼 수 있다. 사무실에 앉아 찾아오는 민원을 기다리거나 원하지도 않는 민원에 ‘당하지’ 말고, 내가 알고 싶고 파악하고 싶은 현장을 의식적으로 배치해서 내가 민원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중심적으로 배치하라고 권하고 싶다. 예를 들면 나는 나의 지역구 서울 성북구에서 여섯번 출마했지만 우리 지역에 산재한 봉제공장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후 나는 거의 일주일에 한번 정도 봉제공장의 현장을 찾아 실태를 파악하고 대화하고 그것을 집대성해서 대책을 마련한 적이 있다. 여러분도 여러분 지역의 현장을 그것도 심층적으로 알고 싶은 현장을 완전히 알 수 있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찾아가라. 거기에 답이 있다.
하나 더 이야기 해보자.
여러분이 선거기간이나 임기 중에 직접 만나서 손을 잡아보는 유권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아마도 유권자의 10%미만일 것이다. 공식 행사장에서 만나는 유권자는 행사 때마다 대부분 중복된다. 그러므로 공식행사장에서의 만남이나 소통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할 것 없다. 더구나 구청행사에는 다양한 관계자들이 나와 자기 자랑을 하는 터에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공식 행사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자신이 중심이 되어 소통할 수 있는 더 중요한 곳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진심을 다햐여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기 중에 직접 만나는 사람은 유권자의 극히 소수임을 안다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알리는 수단은 무엇일까. 국회의원도 그렇지만 지방의회의원들은 신문이나 방송매체 또는 다른 수단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는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알릴 기회는 어떻게 주어질까.
결국 한 번에 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타성에 젖은 정치인이 아닌 진실한 친구로 진심되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부지런히 만나도 만나는 사람이 좋은 인식을 갖게 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하루에 50명의 유권자를 만났어도 그 중 40명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부정적인 여론은 확산된다. 하루에 10명의 유권자를 만났어도 그중에 9명이 좋은 생각을 갖게 되면 긍정적인 여론은 확산된다. 이것이 1년이 쌓이면 자연스레 그 지역의 여론이 되는 것이다. 많이 만나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진심되게 만나는 것에 집중해서, 만난 사람마다 당신의 선전자가 되게 하는 것이 100배의 효과가 있다. 4년을 이렇게 사는 사람은 난공불낙이다.
민주당은 진보정당인가 보수정당인가.
진보나 보수라는 말의 함정도 있지만, 민주당은 진보정당은 아니다. 보수정당도 아니다. 진보적 가치와 합리적 보수 가치를 아우르는 자유주의적 정당이다. 그것은 민주당이 오랜 독재정권과 싸워온 연합세력이라는 역사에서 기인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심화 발전되고 남북 분단의 역사가 협력과 교류의 역사로 바뀌어간다면, 민주당은 자연스레 분화할 것으로 보지만 지금은 지난 정권에서 보듯 독재의 유령은 아직 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고 무엇보다 엄중한 남북분단과 대결이 종식되고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연합군으로서 민주당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연합군으로서 민주당의 리더쉽은 어떠해야 하는가.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고 다양한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진보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수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하거나, 반대로 보수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보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당내에서 경쟁은 있으나 배척은 안된다는 뜻이다. 지금 현재 조건에서 그 경쟁은 다수 당원들의 뜻에 따르는 경쟁이라는 뜻이고, 정당의 후보 추천에 있어서 한 두사람이 결정하는 것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이 결정하는 경선이 그래도 최선의 방법이라는 뜻이다. 리더가 자신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특정한 후보를 배제한다면 민주당은 연합군으로서의 활력을 잃고 점차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세력이 당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또는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은 민주당의 단점이자 강점이다. 여러 수준의 리더(당 대표,지역위원장)는 이런 민주당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그 지지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은 지난 정권의 극도의 실정에서 비롯되었고, 한편으로 우리 사회 내부에 민주주의에 반하는 세력이 지금도 집권에 이를 수 있음을 깨우치는, 극도의 경각심을 국민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큰 지지를 받았지만 지금 문대통령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생각된다. 남북관계도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주춤거리며 특히 경제 문제에 있어서 이렇다 할 실적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의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 김대중대통령의 IT강국의 건설, 노무현대통령의 지방혁신도시의 건설 등으로 표현되는 업적이 우리 기억에 있듯이 문재인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우리 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 이르도록 우리 모두의 중지와 지혜가 필요하다. 너도 나도 구체적인 의견을 널리 구하고 제시하여야 하며 이것이 당원의 임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박수).
남북간의 평화와 협력을 이루고 공동 번영을 퉁해 긍긍적으로 평화 통일에 이르는 것은 민주당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이며 조금 강조해서 말하면 민주당의 정체성과 다른 당과의 차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정책이기도 하다.
북미대화의 핵심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해야 북핵문제가 해결되는가 아니면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미국이 북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하는가 하는 오래된 역사적 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북미대화는 1990년대 이후 체제위기에 봉착한 북한이 핵무장을 추진하여 미국의 불가침 약속을 받고 국가로서 인정받으려는 노력과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싶은 미국의 바램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을 기본에 깔고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미, 남북간의 대화는 병행해서 시작되었고 서로의 우려를 하나씩 해소하면서 비핵화와 평화, 공동번영, 통일로 가는 여정은 우리의 목표로서 다시 조금씩 시작했다. 여기서 남북대화의 중요성과 미묘성이다. 과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 6.15 남북정상회담과 10.4. 정상회담, 그리고 문재인정부의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 등을 살펴보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바뀌어 온 우리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핵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이므로 남북간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남북대화는 북미관계에 종속되지 않으며 주권국가로서 남북관계를 이끌 뿐만 아니라 북미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좀더 담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