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전라북도 익산에 가 귀한 어른 한 분을 뵙는다.
지금의 남북관계를 타개하고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대해 조용한 설명을 듣는다. 아주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신 93세의 어른 같지 않게 분명한 걸음걸이와 발음 그리고 논리의 전개는 그분의 총명한 정신세계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기록을 보니까 젊은 시절에는 겁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 남북관계를 열어가려면 겁 없는 사람이 필요해요. 관직을 갖고 있으면 조심하게 되고 다른 일로 바빠 이 일에 전념할 수 없으니 이 일을 하기에는 바로 지금의 신의원이 적격”이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이 지혜롭게 울돌목이라는 길목을 찾았듯이 평화통일의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며, 걸어가는 도중에는 아량도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북한은 과거 전략노선을 결코 바꾸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 오히려 두려워하는 곳은 북한이 아닌지 묻고, 인도적 지원이 북한의 군량미를 간다고 걱정하지만 설사 남한의 쌀이 북한 군인들에게 간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두려워할 일인가라고 다시 묻는다.
2009년부터 시작된 <걸어서 평화만들기, 한라에서 백두까지>는 그 길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반도 서부의 파주에서 그리고 반도 동부의 고성에서 휴전선은커녕, 남한의 민통선에 막혀 여지없이 끊기곤 했다.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한의 당국자와 실무회담을 제안했는데 북한에서 실무회담 장소와 시간을 알려왔지만 우리 정부의 불허로 불발된 적도 있다. 결국 걸어서 휴전선을 넘어 백두산에 이르는 길은 북이 허락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고 남이 허락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며 남과 북이 함께 허락해야 하는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요구하고 실천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파주의 임진강을 넘어 휴전선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통일대교 남쪽 길목은 그 앞에서 사전 허가된 차량 이외에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나는 몇 번이고 그 앞까지 걸어갔다가 군인들의 저지로 뒤돌아와야 했다.
길은 저토록 잘 닦아져있는데 왜 걸어갈 수 없나. 도대체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만 갈 수 있는 길을 50년 넘게 방치하고도 그대로 있을 것인가. 2021년에는 갈 데까지 가보자.
이 나이에 무엇이 두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