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가족 면회도 금지된, 사실상 봉쇄된 양로원에서 어머니를 겨우 만난다. 양로원의 양해를 얻어, 새 마스크를 꺼내 쓰고 소독약을 손에 바르고 온몸에 뿌리고 2m 거리를 두고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를 오랜만에 만난다.
이상하다.
어머니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 나를 보자 마자 언제나 보이던 소녀같은 웃음도 없고 아무런 말도 없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엊그제가 아버님 기일이며 전라도 함평의 산소에 다녀왔다고 해도, 어머니가 사랑하는가족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심지어 마스크를 벗고 큰 아들이라고 해도, 같이 있던 선생님이 어머니의 감긴 눈꺼풀을 손으로 살짝 올려보아도 반응이 없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선생님들이 보고 같이 당황하며 어머니 귀에 대고 뭐라고 설명해도 기색조차 없다.
난생 처음 그런 광경을 본 나는 사회적 거리를 단번에 무시하고 어머니가 앉아 계시는 휠체어 앞에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 손을 덥썩 잡는다.
“어머니, 저예요! 우리 어머니 손은 언제나 따뜻하네요”
내 손의 차가운 온도로 아들을 알아봤을까. 감긴 눈을 조금 뜨더니 내 손을 잡은 어머니의 왼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어머니의 또 다른 손인 오른손이 내 손위에 포개어진다.그리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기 시작한다. 그 웅얼거림은 상당한 시간 동안 지속된다. 나의 평정심은 사라지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이번에는 어머니 손의 가느다란 떨림의 느낌이 나에게 전해져온다. 선생님 한 분이 “집에 가고 싶어요? 눈물 나네...”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으로 잠깐 나를 기억하지 못한 어머니를 본 것이다.
그곳 선생님 한분이 코로나 이후로 당국의 지시로 장기간 가족을 만나지 못한 것에서 연유된 우울증 때문인지, 올해 들어 이곳에서만 서너분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아무리 위험한 코로나라도 노인들의 유일한 위안인 가족을 떼어놓는 양로원 봉쇄가 대안은 아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그리고 실제 또 다른 죽음에 이르는 양로원 봉쇄가 코로나보다 무섭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