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베를린 방문(2022.3.11~3.20)에서 나는 독일 정당의 역사를 눈 여겨 본다. 고도의 직업훈련시스템처럼 청년 시절부터 각 정당이 청년을 교육 훈련 시키는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고 있어, 우리나라 정치권처럼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신진 등용이나 인재영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3선 이상 금지라는 이상한 말도 없고 물이 흐르듯 순환은 이루어지며 초선도 많고 7~8선의 다선도 많다.
사실 선거를 통한 민주적 대중정당으로 정당이 정착하기까지 독일은 혁명과 선거를 둘러싼 논쟁과 실험과 투쟁과 희생을 겹겹이 지나왔다. 그 많은 논쟁과 희생이 있었던 것은, 현재 선거가 민주적 권력과 질서를 가장 유력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점도 많다는 반증이 된다.
이른 아침 숙소 옆 란트베어 운하길을 걷다가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독일의 정치이론가“로자 룩셈부르크 다리”라고 이름 지어진 다리를 만난다. 혁명의 기운이 전 유럽을 휩쓸던 1919년, 그녀는 우익 자경단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어 그곳 란트베어 운하의 흐르는 물에 던져졌다. 이름 모를 추모자가 놓고 간 장미꽃 다발들이 끊이지 않는 그 다리에는 혁명과 개혁, 민중 봉기와 자유선거, 브로죠아와 프로레타리아, 혁명적 정당과 대중정당 사이에서 고뇌한 그녀를 비롯한 당시 지도자들의 열정과 절망이 함께 어려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치즘같은 파시즘이 벼락같이 권력을 장악했던가.
봉기가 촛불이 되듯이, 우리나라는 독일의 100여년전과는 항의의 양태가 당연히 달라졌지만 대선 후에도 여전한 살인적 증오와 진영대립의 폭풍은 파릇한 춘삼월 삼천리 금수강산에 더 많은 피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념인가, 야심인가, 인기영합인가, 나라를 갈라치기한 지도자들이여, 어떻게 우리 국민을 통합으로 이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