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대선에 직접 참여할 수도 하지도 않았다. 정치입문 31년만에 불가피하게 처음 있는 일이다. 노무현 정몽준후보간 단일화 협상 단장으로 협상을 성공시킨 때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나는 이발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들어, 성북구에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장을 찾아가, 가능한 한 머리를 “쳐깍아버리세요” 주문했다.
숱이 유난히 많고 뻣뻣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의 강도로 유명한 내 머리카락을 싹뚝싹뚝 깎는 기능장의 손은 한올 한올의 저항으로 떨리며, 손안의 가위는 철사를 써는 듯이 쇳소리를 낸다.
단 한표라도 이기는 사람이 막강한 권력을 쥐는 대통령직선제를 두고 권모술수, 흑색선전, 진영논리를 총동원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는 것은 불가피하다. 안철수는 왜 계속 그만두는지 안철수 탓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김기춘의 교시처럼 목숨건 진영싸움의 중간은 회색지대에 불과하며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집권하면 국민통합정부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연합정부 구성을 강제하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는, 누가 집권해도 상위의 통합정부는 커녕 하위의 연합정부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해야 할 일은 미루어진 채, 몇 시간 후면 국민들은 좋던 싫던 이재명, 윤석열 중 한 사람을 새로 대통령 선출하게 될 것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좋다. 그저 나에게 혼자 하는 말이 되더라도 내 머리카락을 싹뚝 자르듯이 말해야겠다.
새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희생해서 대한민국의 정치 기반을 새로 세우는 개헌에 착수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한 선거제도와 권력구조의 분명한 문제를 도대체 언제까지 가지고 걸 것인가. 순수한 내각제로 개헌하거나 분단상황을 고려한다면 외교 안보 국방을 대통령권한으로 하는 변형 내각제 개헌을 하거나 최소한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첨단화와 사회의 다변화 진행 정도가 매우 깊고 광범위하고 이것이 민주주의와 복잡하게 교합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단선 또는 몇 가지 선으로 통합하는 전통적 영웅적 지도자를 요구하지 않으며, 다선과 심지어는 무수한 다른 점으로 이어지는 네트웍을 잘 관리하는 전혀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