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비 오는 날 설악산길 걷기
언제부턴가 나는 비 오는 날 산길을 걷거나, 태풍이 상륙한다는 항구로 다가가거나 또는 한밤중에 혼자 걷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명의 느낌과 소리를 가까이 하게 됐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5월 17일 아침 나는 설악동 계곡 중간쯤에서 설악산을 향해 걸어 나간다.설악산 국립공원 입구까지 평지로 2.8 킬로미터 국립공원에서 비룡폭포까지 산길로 2.2 킬로미터의 길(왕복10km)을 걸을 생각이다
처음에는 우산을 쓴다
나중에는 우산을 접는다
처음에는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나중에는 뭐 비 오는날 산에 사람도 없지만, 있거나 말거나 그냥 나를 산 속에 놓아버린다
처음에는 생각도 한다
어릴 때 추억이 깃든 설악 파크 호텔은 철거 중에 있고, 한국 콘도는 간판만 남았으며,언제나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던 '설악의 아침'은 유령처럼 황폐화되었다. 계곡과 걷는 길 사이에는 담장, 아니 심지어 철조망이 놓여져 있으며 공원 입구에서 돈을 받는 사람은 왜 그렇게 불친절하게 느껴지며 속으로 그가 국립공원 직원일까? 아니면 신흥사 직원일까? 생각하게 된다. 불필요한 곳에 쳐져 있는 철조망을 보아서인지 5월이라 그런지 몰라도 착검한 공수부대가 생각나기도 한다... 등등의 생각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내 머릿속에 나를 중심으로 든 여러 생각들은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의 육감이 열리며 조용히 나를 이 산속에 내려놓게 된다.
음 이제...나무와 온갖 식물들의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국립공원을 나오자 배가 고프다.
된장국의 배추를 넣어 끓여 먹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배추를 먹으면 배추한테 미안한가?
유령의 집처럼 황폐화된 건물들
우산속의 걸어서평화만들기
목재 울타리 그리고 또 철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