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요양시설에 있는 어머니를 시설의 대문에 난 작은 유리창을 통해 뵈었다.
94세의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유리창에 보이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도 표정이 없다. 어머니의 눈이 침침해져서 일지 창문이 작아서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아들의 얼굴을 잊어버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손뼉을 치고 어머니쪽에 핸드폰 스피커를 켜게 하고 손발을 섞어
가며 온갖 묘기를 부려 보아도 어머니의 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대문을 열고 문밖에 서서 큰소리로 어머니라고 부르며 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비로소 소녀처럼 웃으며 손뼉을 친다.
백신을 맞을 것인지 물어서 간호사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조언 해주지 않는다.
나는 단호하게 백신을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항체가 생긴다면 나들이도 하고 봄바람도 맞으며 같이 식사도 하고
항상 내손보다 따뜻한 어머니 손도 잡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어머니의 세계는 정지되었고 적막하다.
폐쇄 된 시설에 격리되어있는 어머니를 대변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라에서 하는 일에 반대하는 어머니도 없다.
아들 딸이 만나기를 원하지만 시설에 있는 어머니들만큼 간절하지는 않다.
그래도 어머니는 참고 또 참는다. 평생을 그래왔듯이.
그러나 어머니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시설에 있는 어머니들과 그 가족에게 백신을 서둘러 맞게 하고 자유로이
면회하고 가족과 함께 외출하며 식사하고 이야기하며 손을 잡아 보게 해야 합니다.
이제 당국은 코로나로 사망에 이르는 어머니들보다
코로나 방역이 가져온 극심한 고독과
우울증으로 사망에 이르고 있는 어머니들을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