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과 심정은 엄중하고 비참하다. 입법로비로 기소된 것을 나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김석규로부터 입법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 또 설사 심정적으로 김석규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역할을 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는데 ‘입법로비’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김석규의 사건이 최초로 보도된 1년전 6월에는 분명 수백억 교비 횡령에 대해 조사를 받았는데 1년이 지난 뒤까지 왜 사법처리가 종결되지 않고 있는가. 왜 검사가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 아들 참 어렵게 유학을 보냈다. 10년전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 근처 공립학교를 다니던 아들은 하교길에서 선배들인 6학년 학생들을 만났다. 제 아들에게 선배들은 “*** 신계륜 아들 지나간다”고 했다. 아들이 돌아서서 ‘어른을 비하한’ 선배들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큰 싸움이 벌어졌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의 중재로 이 사건은 잘 마무리 되었지만 나는 아들을 포함한 가족한테 무심하고 잘못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곧 유학을 보내게 되었다.
돈이 없어 사립학교는 못보내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공립 중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은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유학 자금의 일부가 상임위원장 직책비에서 일부 나갔다는 검사의 지적과 이에 따른 보도가 나가자 나는 또 다시 나쁜 아빠가 되었다.
89세 나의 노모는 보도를 보고, 방송을 보시고 “나도 내 손주에게 유학비 1000만원을 보탰다”고 판사님께 전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전해드린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인생에서 이처럼 참담한 상황이 있었나 싶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느꼈던 죽음과 같은 고통이 지금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차분히 앉아서 사건 기록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평소에 일을 하며 나는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고 생각해왔었다. 그 말의 진실을 지금처럼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검찰이 지은 ‘입법로비’라는 큰집에 혹시 갇혀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악마가 없도록, 글자나 말속에 숨겨져 있을 억울한 것들을 잘 살펴 달라.
개혁정치를 부르짖었던 나도 이런 오해를 받은 것에 대해 정치를 오래하다 보니 혹시 내 소매에 묻은 때를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성찰해보겠다.
이상으로 진술을 마친다.
*이 글은 2015년 6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합의 22부(장준현 부장판사, 정종륜판사, 방일수판사) 결심공판에서 행한 신계륜의원의 최종진술을 요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