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전에 한동훈 위원장의 민주당 운동권 카르텔 청산 주장에 대해서 비판을 했더니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고, 좋은 댓글이 눈에 들어와서 좋습니다.
그건 그렇고 다음 기회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지금 요란한 화제가 되고 있는 정당의 공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사실 공천 때만 되면 항상 그럽니다. 늘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정당의 공천은 자신의 얼굴을 나타내는 가장 직접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당의 정체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후보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늘 어렵습니다. 그래서 당의 대표나 지도부는 늘 그 몫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언제나처럼 당대표와 지도부의 몫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말은 당의 공천에는 당대표와 지도부의 철학과 가치관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전제로 해서 보아도 지금의 공천은 뭔가 좀 선진적이지 않은, 후진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지 않나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는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저에게도 자주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
현재 공천과정은 중앙당에서 2개의 위원회인 검증위원회,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담당합니다. 그 결과가 지역의 당원과 유권자에게 전달되는 형식입니다.
살펴보면 우선 당의 후보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중앙당 검증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합니다. 그리고 그 후보자가 제출한 서류심사만을 받습니다. 그리고 공천관리위원에서는 면접심사를 받습니다만, 그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그 결과 한 지역구에서 2명 이상의 후보가 공천관리위원회를 통과되는 경우 대체로 여론조사 경선을 치루게 됩니다. 그 때 여론조사 기관의 선정은 중앙당에서 하게 됩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우선 중앙당 검증위원회는 법적 출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검증위원회가 정한 기준에 미흡하면 탈락시키기도 합니다. 다음에 역시 공천관리위원회에서도 당헌, 당규 뿐만 아니라 공천관리위원회가 정한 기준에 미흡하면 다시 탈락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정무적 판단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적합도 조사 결과를 더해서 단수 후보로 추천하거나 아니면 경선 후보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경선 후보의 경우에는 중앙당이 정한 여론조사 기관을 통해서, 지역의 당원과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서 최종후보를 결정하는 그런 단계를 밟아갑니다. 과거 당대표가 일반적으로 하던 공천과정을 최종적으로는 해당 지역구의 당원과 유권자가 하도록 제안하는 것은 공천권에 대한 일종의 절충과 타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다릅니다. 무려 4년 동안 준비한 국회의원 후보자가 아주 중요한 심사를 받는 2개의 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이력과 활동내역을 적은 서류를 제출하는 일과 그리고 아주 간단한 면담 뿐 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정당의 국회의원을 공천하는데 이건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뭔가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이유입니다.
제가 아는 영국의 한 정당은 후보가 되려는 사람과 핵심 당원과의 합숙 수련회와 같은 일련의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갖는다고 합니다. 시간도 꽤 걸린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후보자의 문제해결 능력이나, 인품이나 정책능력, 이런 것들을 자세히 검증하는 절차를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과정을 가지려면 공천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루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제가 이 자리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제가 평소에 이런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이런 다툼에 대해서 작은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제도개선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다음부터는 올바로 실천을 하자는 그런 의미로 저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 성격이나 규모로 볼 때, 중앙당에서는 불가능 합니다. 지역위원회 단위로, 지역 당원들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공천과정에서 중앙당의 두 위원회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을 지역위원회와 지역당원들에게 이양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치신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 지역당원들과 밀접한 접촉의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지금 정치신인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당원들은 또한 후보자의 대한 판단 근거를 점차 갖게 될 수 있고, 지금 중앙당의 두 위원회에서 짧게 진행하는 서류심사나 간단한 면접보다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로 후보자에 대한 판단근거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야 아까 말한 정치 신인들의 당원과의 자유롭고 밀접한 접촉기회도 많아지고, 선거 때 갑자기 낯선 후보가 나타나 당의 후보라고 해서 당원들을 당황하게 하는 일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낙하산 공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앙당은 후보자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후보등록을 받고 그 명부를 작성하여 비치해 두었다가 간단한 법적 자격 유무만을 검토하고, 지역위원회에 내리면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지금 검증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가 하는 일을 거기서 하는 것이 되죠. 이렇게 되면 훨씬 효율적이고 실질적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충실해지는 그런 과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태라면, 또 이런 과정이 진행된다면 지역의 후보들과 당원과의 숙의로 후보를 바로 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결정되지 않으면 후보들간의 협의로 여론조사 기관을 스스로 선정해서 경선을 하고, 또 경선한 이후에 자기가 문제제기를 하든가, 이의가 있을 때와 의문이 있을 경우에는 검증도 가능하게 되어서 지금과 같은 분란의 소지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중앙당의 전략공천은 이 같은 과정을 밟을 수 없게 된 사고지역구에 한해서 중앙당이 진행하면 될 일입니다. 어쨌든 요즘 민주당의 공천과정에서 조금 요란한 불협화음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민주당원의 한 사람으로써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그런 제 마음속에 한 편의 짧은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인 김용택 시인이 쓴 매화라는 시입니다. 어떤 그립고 기대하는 것이 다가오는데, 너무나 기대되고, 또는 너무나 기대되는 것이 두려워서 차라리 올 듯 말 듯 하다가 안 왔으면 좋겠다는 그런 심정을 표현하고 있어요. 4월 10일 선거가 다가오는데,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매화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매화꽃이 피면
그대 오신다고 하기에
매화더러 피지 마라고 했어요.
그냥, 지금처럼
피우려고만 하라구요.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제 마음과 같은가요?